MOSAYO/ GUIDE/ 1985년의 일본, 2026년의 한국 — 반도체 패권의 데자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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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의 일본, 2026년의 한국 — 반도체 패권의 데자뷔

지적의 내용은 정반대인데, 명분은 같다

작성 2026-07-20 수정 2026-07-20 글쓴이: · 前 애널리스트 現 투자자

지금 한국 반도체를 둘러싼 상황을 보면 기시감이 듭니다. 40년 전 일본이 지나온 길과 겹치는 대목이 많아서입니다. 다만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도 있습니다. 그 차이가 무엇인지 정리해봤습니다.

1. 40년 전, 일본에게 벌어진 일

1985년 일본 반도체는 미국 시장을 압도하고 있었습니다. 삼성전자는 명함도 내밀지 못하던 시절입니다.

미국의 대응은 세 단계였습니다.

환율. 1985년 플라자 합의로 달러당 250엔대였던 엔화가 1년 만에 120엔대까지 절상됐습니다. 일본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절반으로 깎였습니다.

협정. 1986년 미일 반도체 협정으로 시장 점유율을 정부 간 합의로 조정했습니다.

관세. 일본이 협정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미국은 1987년 일본산 전자제품에 100% 보복관세를 부과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일본의 점유율은 크게 무너졌고, 그 공백을 한국 기업들이 채웠습니다. 지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선 자리는 그렇게 만들어진 자리입니다.

2. 지금 한국에게 벌어지는 일

2026년 들어 벌어진 일들을 시간 순으로 놓아보겠습니다.

1월 14일 — 트럼프 대통령이 반도체 포고문에 서명했습니다. 미국으로 수입되는 특정 반도체가 미국의 기술 공급망 구축이나 제조역량 강화에 기여하지 않을 경우 25%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1월 16일 — 러트닉 상무장관이 뉴욕주 마이크론 공장 착공식에서 말했습니다. 메모리 반도체를 만들려는 기업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는데, 100% 관세를 내거나 미국에서 생산하는 것이라고요. 특정 국가를 언급하진 않았지만 한국과 대만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됐습니다.

6월 25일 —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연방지방법원에 집단소송이 제기됐습니다. 소비자 14명과 PC 조립·유통업체 3곳이 원고입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이 세계 D램 시장의 90% 이상을 과점한 구조를 이용해, HBM 전환을 명분으로 범용 D램 공급을 줄이고 가격을 담합했다는 주장입니다. 소장은 4년간 가격이 약 700% 올랐다며 이를 '램포칼립스'라 표현했습니다.

7월 10일 — SK하이닉스가 나스닥에 ADR을 상장했습니다. 공모가 149달러, 조달 규모는 약 265억 달러(40조 원)입니다.

여기서 100%라는 숫자가 두 번 등장합니다. 1987년 일본에게 매겨진 보복관세와, 2026년 한국·대만을 향한 경고. 우연일 수도 있지만 눈에 띄는 반복입니다.

3. 명분은 같다

흥미로운 건 지적받는 내용입니다.

40년 전 일본은 너무 싸게 판다고 지적받았습니다. 덤핑이라는 이름이었죠. 지금 한국은 너무 비싸게 판다고 지적받고 있습니다. 담합이라는 이름으로요.

정반대의 지적입니다. 그런데 명분은 같습니다. 미국 시장의 공정한 경쟁 질서. 그리고 결과적으로 향하는 방향도 비슷합니다. 미국 안에 생산 능력을 들여놓으라는 것.

과거 전력도 부담입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2000년대 미국 법무부의 D램 담합 사건에서 유죄를 인정한 적이 있습니다. 총 7억 3,100만 달러의 벌금이 부과됐고 일부 임원은 실형을 받았습니다. 이번 소장도 피소된 3사가 과거에도 경쟁 제한 행위를 벌였다는 점을 근거로 들고 있습니다.

다만 이번 소송은 아직 민사 단계이고, 실제 담합이나 공급 제한이 있었는지는 재판에서 입증돼야 합니다. 2022년 3월 제9순회항소법원은 유사한 사안에서 감산이 담합보다는 '의식적인 병행 행동'에 가깝다고 판결한 전례도 있습니다.

4. 그런데 결정적으로 다른 점

여기서 일본과 한국의 상황이 갈립니다.

1985년 미국에게 일본은 대체 가능한 존재였습니다. 일본을 눌러도 미국 자신과 다른 파트너가 그 자리를 메울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 자리를 한국이 채웠고요.

2026년 미국에게 한국은 조금 다릅니다. 중국의 메모리 굴기를 견제하려면 대안이 필요하고, 데이터센터급 D램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습니다. 러트닉 장관의 발언도 자세히 보면 "만들지 마라"가 아니라 "미국에서 만들어라"입니다.

즉 지금의 압박은 배제가 아니라 유치에 가깝습니다. 관세는 그 협상의 지렛대고요. 실제로 정부도 0%부터 15%, 25%, 최대 100%까지 관세율별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SK하이닉스의 나스닥 상장도 이 맥락에서 읽을 여지가 있습니다. 미국 자본시장에 직접 발을 들이는 것은 자금 조달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 투자자와 규제 환경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기도 합니다.

5. 그래서 무엇을 봐야 하나

지금 반도체에서 벌어지는 일은 개별 기업의 경쟁력 문제라기보다, 어느 나라 땅에 생산 능력을 둘 것인가를 둘러싼 재배치에 가깝습니다.

관세 뉴스와 소송 뉴스는 계속 나올 겁니다. 그때마다 주가는 반응하겠죠. 다만 그 개별 사건들이 어느 방향의 큰 흐름에 속하는지를 함께 보면, 같은 뉴스도 다르게 읽힙니다.

물론 1985년의 일본과 2026년의 한국이 같은 결말을 맞을 거라고 단정할 근거는 없습니다. 대체 가능성이라는 조건이 다르고, 미국의 목적도 배제보다 유치에 가까워 보입니다. 다만 40년 전의 일본도 당시에는 자신들이 기술적으로 앞서 있다고 여겼다는 점은 기억해둘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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