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편에서 반도체 이야기를 했습니다. 미국이 한국을 배제가 아니라 '유치'하려 한다는 것, 그 흐름이 샌프란시스코 AI 서밋에서 구체화됐다는 것이었죠. 그런데 같은 패턴이 전혀 다른 산업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조선입니다.
올해 K-조선에는 상반된 두 흐름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는 아픈 소식인 캐나다 잠수함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 탈락이고, 다른 하나는 상대적으로 조용히 진행 중인 미 해군 MRO 수주의 확대입니다. 이 둘을 같이 봐야 지금 K-조선에서 벌어지는 구조 변화가 보입니다.
아픈 소식 — 캐나다 잠수함, 독일에 밀리다
7월 6일(현지시간), 캐나다는 차세대 잠수함 사업(CPSP)의 우선협상대상자로 독일 TKMS를 선정했습니다. 잠수함 최대 12척 건조에 30년 유지·운영까지 더해 최대 60조원 규모로 평가되던 사업입니다.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이 원팀으로 막판까지 경쟁했지만 고배를 마셨습니다.
다만 아직 최종 계약이 체결된 것은 아닙니다. 캐나다 정부는 TKMS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정했을 뿐이고, 한화오션은 공식적으로 '예비 공급자'로 지정됐습니다. 카니 캐나다 총리는 TKMS와의 협상이 결렬될 경우 한화오션과 우선 협상하겠다고 명시했습니다. 즉 협상이 최종 계약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한화오션이 대안으로 남아 있는 셈입니다.
패인을 두고는 여러 분석이 나옵니다. 캐나다 정부의 공식 설명은 TKMS가 '전체적인 능력과 가치'에서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업계와 주요 외신에서는 독일·노르웨이와의 NATO 상호운용성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캐나다 측도 212CD 잠수함의 북극 운용 적합성과 NATO 회원국 간 협력 가능성을 강조했습니다.
주목할 만한 건 한국 컨소시엄이 내놓은 산업 협력의 규모입니다. 한화오션은 캐나다 최대 철강사 알고마 스틸에 약 2억 달러 규모의 현지 형강 공장 투자를 포함한 협약을 맺었습니다. 관세로 타격을 입은 지역 고용을 되살린다는 점에서 현지의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다만 이 협약은 잠수함 수주를 전제로 한 것이라, 탈락과 함께 효력을 잃게 됐습니다.
조용한 낭보 — 미 해군 정비 시장의 가속
잠수함 뉴스에 가려졌지만, 더 구조적인 변화는 다른 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미 해군 함정 유지·보수·정비(MRO) 시장입니다.
2026년 들어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각각 2건씩, 총 4건의 미 해군 MRO 사업을 수주했습니다. 지난해 두 회사 합쳐 3건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몇 달 만에 연간 실적을 넘어선 속도입니다. HD현대중공업은 7함대 소속 화물보급함들의 정기 정비를 연달아 따냈고, 한화오션은 부산·진해에서 지역 정비업체들과 협력 체계를 꾸려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여기에 세 번째 주자도 합류했습니다. HJ중공업이 2026년 초 미 해군과 함정정비협약(MSRA)을 체결하고, 부산 영도조선소에서 군수지원함 정비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례가 있습니다. HD현대중공업이 정비한 군수지원함 '앨런 셰퍼드'함은 당초 60여 개 항목의 작업으로 시작했는데, 정비 과정에서 100여 개 항목이 추가로 발굴돼 정비 기간과 계약 금액이 크게 늘었습니다. 정비 사업이 한 번 시작되면 어떻게 확장되는지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이 흐름은 '마스가(MASGA)'로 불리는 한미 조선 협력의 교두보로 평가됩니다. 미국은 자국 상선 건조 능력이 세계 시장의 1% 안팎으로 쪼그라든 상태에서, 함정 정비를 감당할 동맹국의 조선 역량을 필요로 합니다. 반도체에서 본 것과 같은 구조입니다.
큰 수주와 반복 수주의 차이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게 있습니다. 잠수함과 MRO는 사업의 성격이 다릅니다.
잠수함 사업은 성공하면 수십조 원의 장기 일감을 확보하는 초대형 프로젝트입니다. 게다가 잠수함도 건조 후 30년 이상 유지·보수가 따라붙습니다. 그러니 단순히 '일회성 수주'라고 평가절하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수주 경쟁에서 한 번 탈락하면 다음 기회를 수년간 기다려야 합니다.
반면 MRO는 한 척당 계약 규모는 작아도, 함정이 운용되는 기간 내내 검사와 수리, 개조 수요가 반복됩니다. 큰 수주와 반복 수주의 차이입니다. 캐나다 잠수함이 '큰 한 방'이었다면, 미 해군 MRO는 '꾸준한 흐름'입니다. 화제성은 전자가 크지만, 사업의 체질을 바꾸는 건 후자일 수 있습니다. 경기민감 산업이던 조선이 안보 인프라라는 새로운 성격을 얻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봐야 하나
물론 신중해야 합니다.
첫째, 지금 국내 조선사의 MRO 수주는 대부분 일본을 거점으로 하는 미 해군 7함대 물량에 집중돼 있습니다. 아직 시장의 범위가 제한적이라는 뜻입니다. 미국 내에서 함정을 정비하려면 현지 규제를 넘어야 하는데, 이 규제 환경이 앞으로 시장 확대의 관건입니다.
둘째, 조선업 역시 그동안 주가가 많이 오른 상태입니다. 좋은 수주 소식이 나와도 주가가 바로 화답하지 않을 수 있고, 반대로 캐나다 탈락 같은 악재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뉴스 하나하나의 방향과 주가의 방향은 별개입니다.
그럼에도 큰 그림은 비교적 선명합니다. 미국의 세계 상선 건조 비중은 현재 1%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자국 조선업만으로 상선과 군함의 건조·정비 수요를 모두 감당하기 어려운 만큼, 한국과 일본 같은 동맹국의 생산 능력이 필요합니다.
반도체에서 봤던 흐름과 닮았습니다. 미국이 모든 것을 한국에 맡기려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의 생산 능력과 기술을 미국 중심의 공급망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것입니다.
캐나다 잠수함 사업의 탈락은 분명 아쉽습니다. 하지만 잠수함 한 건의 성패만으로 K-조선의 방향을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화려한 수주 발표보다, 미 해군 MRO 자격과 실적이 쌓이고 정비 범위가 지원함에서 전투함으로 넓어지는지를 지켜봐야 합니다.
잠수함이라는 큰 한 방은 놓쳤습니다. 대신 반복해서 들어올 수 있는 정비 물량의 문은 조금씩 열리고 있습니다. K-조선의 다음 장은 새 배를 만드는 조선소뿐 아니라, 운항 중인 함정을 계속 움직이게 만드는 정비 거점에서 시작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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