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칼럼을 통해, AI에 투입되는 10조 달러 규모의 자본을 이야기하며 "기술의 미래가 밝은 것과, 그 기술에 투자된 모든 자본이 수익을 내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짚은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그 이야기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어가 보려 합니다. 역사상 가장 비슷한 사례인 닷컴버블이 실제로 어떻게 무너졌는지, 그 과정을 단계별로 뜯어보는 것입니다.
먼저 지금 시장의 풍경을 봅시다. 최근 미국 장기금리가 빠르게 오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식시장은 생각보다 잘 버팁니다.
금리가 오르면 미래 현금흐름의 할인율이 높아지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주식, 특히 성장주에는 부담입니다. 하지만 반드시 금리 상승이 주가 하락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경제가 강하고 기업이익이 더 빠르게 증가한다면, 높은 금리를 충분히 상쇄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지금 미국 증시를 지탱하는 논리도 여기에 있습니다. AI 투자 확대가 기업들의 실적을 끌어올리고 있고, 미국 경제 역시 아직 견조합니다. 금리가 높아졌지만 기업이익이 더 빠르게 증가한다면, 주식시장이 버티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떠오르는 사례가 있습니다. 닷컴버블입니다. 닷컴버블 역시 금리가 오르자마자 무너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연준이 금리를 올리는 동안, 나스닥은 마지막으로 더욱 가파르게 상승했습니다. 그렇다면 닷컴버블은 왜 무너졌을까요. 그리고 그 과정을 지금의 AI 투자 사이클과 비교하면 무엇을 알 수 있을까요.
1. 금리를 올렸는데도 나스닥은 올랐다
1990년대 후반 미국 경제에는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기술혁명이 등장했습니다. 인터넷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전망 자체는 틀리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인터넷은 이후 경제와 산업, 우리의 생활방식까지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그 기술을 둘러싼 기대와 투자였습니다. 인터넷 이용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인터넷 기업들의 주가가 올랐고, 높은 주가는 다시 기업들의 자금조달을 쉽게 만들었습니다. IPO와 벤처투자가 급증했고, 그렇게 조달된 돈은 통신망과 광섬유, 서버, 네트워크 장비와 데이터센터 등에 다시 투자됐습니다.
선순환처럼 보였습니다. 인터넷 성장 기대가 주가를 올리고, 오른 주가가 자금조달을 쉽게 만들고, 그 돈이 투자로 이어지고, 투자가 관련 기업 실적을 키우고, 그것이 다시 더 높은 성장 기대와 주가 상승으로 돌아오는 구조였습니다.
그러던 1999년, 연준이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연준은 1999년 6월부터 2000년 5월까지, 여섯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4.75%에서 6.50%까지 인상했습니다. 그런데 금리인상이 시작됐다고 나스닥이 바로 무너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나스닥은 인상이 시작되기 직전부터 2000년 3월 고점까지 약 88% 더 올랐고, 그 고점은 5,048이라는 당시 사상 최고치였습니다.
이 부분은 지금 시장을 이해하는 데도 중요합니다. 금리가 오른다고 버블이 곧바로 터지는 것은 아닙니다. 경제가 좋고 기업이익에 대한 기대가 강하다면, 시장은 상당 기간 높은 금리를 무시할 수도 있습니다.
2. 닷컴버블을 무너뜨린 것은 금리 하나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시간이 지나면서, 인터넷에 대한 기대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투자가 실제 수요보다 너무 빠르게 증가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통신산업에서는 장거리 광섬유망과 통신설비에 막대한 자금이 투입됐습니다. 인터넷 트래픽이 앞으로 엄청나게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 아래, 기업들은 경쟁적으로 네트워크를 깔았습니다. 경쟁사가 투자하면 나도 투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문제는 모두가 동시에 같은 판단을 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일부 영역에서는 실제 수요가 투자된 설비를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기술의 방향은 맞았지만, 투자 속도가 너무 빨랐습니다.
여기에 금리 상승이 겹쳤습니다. 금리가 올라가면 두 가지 일이 발생합니다. 첫째, 미래 이익의 현재가치가 떨어집니다. 특히 당장은 돈을 벌지 못하지만 먼 미래에 큰 이익을 낼 것으로 평가받던 성장기업일수록, 할인율 상승에 민감합니다. 둘째, 자금조달 비용이 올라갑니다. 적자를 감수하며 외부자금으로 성장하던 기업들에게는 더 치명적입니다.
그러면서 시장의 질문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넷이 얼마나 크게 성장할까?"에서 "그래서 이 회사는 언제 돈을 벌 수 있을까?"로 말입니다.
3. 선순환이 역회전하기 시작했다
버블의 무서운 점은, 상승 과정과 하락 과정이 서로 닮아 있다는 것입니다. 상승기에는 주가 상승이 자금조달을 늘리고, 그 돈이 투자로, 투자가 매출로, 매출이 다시 성장 기대와 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자기강화 과정이 작동합니다. 하지만 기대가 한번 흔들리면, 정확히 반대로 움직입니다.
과잉설비가 확인되면 투자가 줄고, 투자가 줄면 IT기업 매출이 둔화되고, 매출이 둔화되면 이익 전망이 내려가고, 그러면 주가가 떨어지고, 주가가 떨어지면 IPO와 증자가 어려워지고, 자금조달이 막히면 다시 투자가 줄어듭니다.
특히 2000년 하반기로 가면서 기술기업들의 매출과 이익 증가율이 둔화되기 시작했고, 그동안 높은 성장률을 전제로 평가받았던 기업들의 밸류에이션을 정당화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적자 기업들은 주가가 떨어지자 새로운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워졌고, 일부 기업은 사업을 축소하거나 사라졌습니다.
동시에 통신·IT 기업들은 투자를 줄였습니다. 그러자 그동안 투자 확대의 수혜를 받았던 네트워크 장비와 반도체, 서버 기업들의 실적 전망까지 악화됐습니다. 설비투자(CAPEX)가 설비투자를 부르던 사이클이, 설비투자 감소가 설비투자 감소를 만드는 사이클로 바뀐 것입니다. 결국 나스닥은 2000년 3월 고점을 찍은 뒤, 2002년 10월 저점까지 약 78% 하락했습니다.
4. 그러나 인터넷이 실패한 것은 아니었다
닷컴버블을 이야기할 때 가장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인터넷은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인터넷에 대한 장기적인 전망은 맞았습니다. 그 이후 아마존과 구글을 비롯한 거대한 기업들이 등장했고, 클라우드와 스마트폰, SNS, 전자상거래가 세계 경제를 바꿨습니다.
틀렸던 것은 인터넷의 미래가 아니라, 그 미래를 현재 가격과 투자에 얼마나 빠르게 반영했느냐였습니다. 1999년의 시장은 앞으로 10년, 20년에 걸쳐 발생할 성장을 너무 빠르게 주가에 반영했습니다. 기업들도 그 미래 수요를 너무 빨리 현실의 설비투자로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닷컴버블의 교훈을 단순히 "신기술 주식에 투자하면 위험하다"라고 이해하면, 핵심을 놓치게 됩니다. 오히려 이렇게 표현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기술혁명과 투자수익률은 서로 다른 문제다.
5. 그렇다면 지금 AI는 어떨까
여기서 현재 AI 투자 사이클을 보면, 흥미로운 유사점이 보입니다. 당시 인터넷 시대의 광섬유와 통신망이 있었다면, 지금은 GPU와 AI 데이터센터가 있습니다. 당시 시스코(Cisco)와 선마이크로시스템스(Sun Microsystems) 같은 장비기업이 있었다면, 지금은 엔비디아와 브로드컴을 비롯한 AI 인프라 기업들이 있습니다. 당시 서버와 네트워크 투자가 있었다면, 지금은 GPU와 HBM, 데이터센터, 전력망, 변압기, 냉각설비에 막대한 투자가 들어가고 있습니다.
구조만 보면 상당히 비슷합니다. AI 성장 기대가 AI 기업 주가를 올리고, 오른 주가와 풍부한 현금이 투자를 키우고, 그 투자가 GPU·메모리·데이터센터 수요를 늘리고, 그것이 관련 기업 실적을 키우며, 다시 AI 성장 기대를 강화하는 자기강화 사이클이 지금도 작동하고 있는 셈입니다.
6. 하지만 2000년과 결정적으로 다른 것도 있다
그렇다고 지금을 곧바로 2000년과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가장 큰 차이는, 돈을 벌고 있는 기업들이 투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닷컴버블 당시에는 이익은커녕 제대로 된 매출조차 없는 기업들이, 미래 성장 기대만으로 막대한 자금을 조달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반면 현재 AI 투자를 주도하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알파벳, 아마존, 메타 등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현금흐름을 만들어내는 기업들입니다. 엔비디아 역시 이미 막대한 매출과 이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 AI 투자 사이클의 재무적 기반은, 닷컴버블 당시보다 훨씬 탄탄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차이는 매우 중요합니다. AI 투자가 당장 기대만큼 돈을 벌지 못한다고 해서, 주요 기업들이 곧바로 자금난에 빠질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그래서 현재를 단순히 '제2의 닷컴버블'이라고 부르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7. 오히려 걱정되는 것은 AI의 실패가 아니다
저는 AI가 앞으로 세상을 바꿀 가능성은 높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AI가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오히려 과잉투자가 발생할 가능성입니다.
경쟁사들이 수백억 달러씩 AI 인프라에 투자하는 상황에서, 한 기업만 투자를 늦추기는 쉽지 않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투자하면 알파벳도 투자해야 하고, 아마존과 메타 역시 뒤처질 수 없습니다. AI 모델 기업들은 더 많은 컴퓨팅 자원을 요구하고, 데이터센터 사업자는 더 많은 GPU를 확보하려 합니다. GPU가 늘어나면 더 많은 전력이 필요하고, 전력망과 냉각, 변압기와 발전설비 투자가 따라옵니다.
현재는 이 모든 투자가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수요가 공급보다 빠르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투자 사이클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수요가 사라지는 순간이 아닙니다. 공급 증가 속도가 수요 증가 속도를 넘어서는 순간입니다.
8. AI판 닷컴버블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 가능성이 높다
AI 수요가 계속 증가한다고 가정해봅시다. 기업들은 그 수요를 예상해 더 많은 데이터센터를 짓습니다. GPU와 HBM 생산능력이 증가하고, 전력 인프라도 확대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AI 매출과 생산성 증가 속도가 투자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투자자들은 질문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돈을 투자해서, 실제로 얼마를 벌고 있는가?" 그 순간부터 투자 사이클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AI 수익화 속도가 둔화되면 AI 투자수익률이 떨어지고, 그러면 하이퍼스케일러(초대형 클라우드 사업자)의 설비투자 증가율이 둔화되고, GPU와 HBM 주문 증가율도 둔화됩니다. 반면 그동안 지어온 데이터센터 공급은 계속 늘어나 있으니, 가동률과 가격, 마진에 압박이 생기고, AI 인프라 기업들의 이익 전망이 내려가며, 높았던 밸류에이션이 압축됩니다.
이 과정이 반드시 발생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닷컴버블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과, 구조적으로 상당히 비슷합니다.
9. 그렇다면 최근 금리 상승은 어떻게 봐야 할까
여기서 다시 금리 이야기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현재 미국 장기금리가 높은 수준까지 올라왔다는 사실만으로, AI 투자 사이클이 끝났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닷컴버블 때도 그랬습니다. 연준이 금리를 올리기 시작한 뒤에도 나스닥은 상당 기간 상승했습니다. 기업이익과 경제성장이 충분히 강하면, 높은 금리를 견딜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금리가 높아질수록, AI 투자에 요구되는 수익률도 높아집니다. 자본비용이 3~4%일 때 경제성이 있었던 데이터센터 프로젝트가, 자본비용 6~7%에서도 똑같이 매력적일 수는 없습니다. 특히 AI 투자가 자체 현금흐름만으로 충당되지 않고 회사채와 프로젝트 파이낸싱 같은 외부자금에 점점 의존하게 된다면, 금리의 영향은 더 커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금리는 버블을 터뜨리는 단 하나의 원인이라기보다, 투자 사이클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촉매에 가깝습니다. 닷컴버블에서도 그랬습니다.
10. 지금 봐야 할 것은 금리 하나가 아니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미국 10년물 금리만 볼 것이 아니라, 몇 가지를 함께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AI 설비투자와 AI 수익화의 속도 차이입니다. AI 관련 투자가 매년 30~50%씩 증가하더라도, AI에서 발생하는 매출과 현금흐름이 그보다 빠르게 증가한다면, 지금의 투자 사이클은 상당 기간 지속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설비투자는 계속 빠르게 증가하는데 AI 매출 증가율이 둔화되기 시작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여기에 금리가 높은 수준에서 유지되고 기업들의 외부자금 조달까지 증가한다면, 투자수익률에 대한 시장의 눈높이는 더욱 높아질 것입니다.
제가 경계하는 조합은 이것입니다. 금리 상승, AI 설비투자 폭증, 그리고 AI 수익화 둔화. 이 세 가지가 동시에 나타나기 시작한다면, 닷컴버블 당시 투자 사이클이 역회전하기 시작했던 과정과 비교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맺으며: AI는 맞을 수 있다. 주가는 틀릴 수도 있다
닷컴버블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흥미로운 교훈은, 인터넷에 대한 낙관론이 틀렸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인터넷에 대한 전망은 맞았습니다. 하지만 기술에 대한 올바른 전망이, 반드시 좋은 투자수익률을 보장하지는 않았습니다. 기술의 발전 속도와, 시장이 그 기술을 가격에 반영하는 속도, 그리고 기업들이 그 기대에 맞춰 자본을 투입하는 속도는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AI 역시 마찬가지일 수 있습니다. AI가 앞으로 세계 경제의 생산성을 크게 높이고 산업구조를 바꿀 가능성과, 현재 AI 관련 기업들의 주가와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모든 AI 인프라 투자가 적정한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저는 아직 AI 투자 사이클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AI 수요와 기업이익을 보면, 사이클이 계속되고 있다고 보는 편이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는 AI가 얼마나 발전하느냐보다, AI에 투입되는 자본이 얼마의 수익을 만들어내느냐를 더 중요하게 봐야 할 시점이 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닷컴버블 역시 인터넷이 가장 뜨거웠을 때가 아니라, 그동안 이루어진 막대한 투자의 수익성에 의문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무너졌습니다. AI도 언젠가 같은 질문을 받게 될 것입니다. "AI는 얼마나 대단한 기술인가?"가 아니라, "그래서 이 투자로 얼마를 벌 수 있는가?" 어쩌면 AI 투자 사이클의 진짜 시험대는, 그 질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순간일지도 모릅니다.
※ 본 글의 수치·전망은 2026년 9월 27일 시점의 공개 자료를 기준으로 하며, 시장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 본 글은 정보 공유를 위한 것이며, 특정 자산에 대한 매수·매도 권유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