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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까지 양보했는데, CLARITY Act는 왜 무너졌나

126개 수정에도 넘지 못한 '60'이라는 숫자

작성 2026-09-16 수정 2026-09-16 글쓴이: · 前 애널리스트 現 투자자

크립토 시장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CLARITY Act가 결국 상원의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9월 15일 미국 상원에서 진행된 표결 결과는 49대 50이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법안 자체에 대한 최종 표결은 아니었습니다.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하기 위해 필요한 토론종결(cloture) 표결이었는데, 여기에는 60표가 필요합니다. 결과적으로 CLARITY Act는 출발선조차 넘지 못했습니다.

앞서 저는 이 표결을 앞두고, CLARITY Act가 단순한 '친크립토 법안'이 아니라 미국 디지털 금융의 질서를 누가 정하느냐를 둘러싼 싸움이라고 짚은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싸움은 결국, 표결 자체를 시작하지도 못한 채 멈춰 섰습니다.

1. 흥미로운 건 표결 직전까지의 과정이다

이번 법안은 단순히 공화당이 밀어붙인 법안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1년 넘게 민주당과 공화당이 협상을 이어왔고, 막판에는 공화당이 민주당이 요구해온 126개의 수정사항을 반영한 635쪽짜리 최종안을 내놓았습니다. 이 수정은 크게 세 갈래였습니다. 공직자 윤리규정, 스테이블코인 감독, 그리고 거래 프로토콜 등록 문제입니다.

특히 가장 큰 쟁점은 트럼프 대통령과 고위 공직자의 크립토 이해충돌 문제였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표결 직전, 공화당 톰 틸리스와 민주당 루벤 갈레고가 협상해온 윤리조항의 상당 부분을 받아들였습니다. 공직자와 그 배우자의 디지털자산 발행·후원을 제한하고, 일부 사안에서는 주 법무장관에게 집행 권한을 부여하며, '상당한' 규모의 크립토 지분은 매각하거나 백지신탁에 맡기도록 하는 내용까지 포함됐습니다. 공화당은 이를 사실상 민주당에 보낸 '마지막 제안'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런데도 표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왜일까요?

2. 표면적 이유와 진짜 이유

표면적으로는 윤리조항이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반대 측의 핵심 이유였습니다. 트럼프 일가의 크립토 사업 규모가 워낙 커져서, 민주당은 제안된 윤리조항으로도 이해충돌을 충분히 막을 수 없다고 봤습니다. 실제로 표결 직전 민주당은 별도의 대안을 제시하며 협상을 이어가려 했지만, 끝내 합의점을 찾지 못했습니다.

결국 공화당 안에서도 이탈표가 나왔습니다. 수전 콜린스, 조시 홀리, 제리 모런 세 명이 반대표를 던졌고, 톰 틸리스는 나중에 재심의를 청구하기 위해 절차적으로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하지만 CLARITY Act를 둘러싼 갈등은 이미 단순한 '크립토 규제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의 문제를 넘어서 있었습니다. 트럼프 일가의 크립토 사업과 이해충돌, 스테이블코인 이자를 둘러싼 은행권과 크립토 업계의 충돌, DeFi와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어디까지 규제할 것인지, 불법금융과 소비자보호 문제까지, 수많은 이해관계가 하나의 법안에 얽혀 있었습니다.

결국 CLARITY Act는 '크립토를 규제하는 법'인 동시에, 미국 금융시장의 새로운 질서를 누가 결정할 것인가를 둘러싼 싸움이 되어버렸습니다.

3. 이번 실패가 중요한 이유

CLARITY Act의 핵심은 단순히 크립토 산업에 우호적인 법을 만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디지털자산을 SEC가 규제하고 어떤 영역을 CFTC가 담당할 것인지, 거래소와 토큰 발행자는 어떤 규칙을 따라야 하는지 등, 미국 디지털자산 시장의 기본적인 '교통정리'를 하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법안이 멈추면서, 이 불확실성도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그리고 시장은 곧바로 반응했습니다. 표결이 부결되는 흐름이 확인되자 비트코인 가격은 8만 달러 근처에서 7만 6천 달러 선까지 밀렸고, 서클·코인베이스 같은 크립토 관련 상장기업들의 주가도 하락했습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앞서 저는 CLARITY Act의 진짜 수혜자가 비트코인 자체보다, 규제 명확성을 기다려온 거래소·커스터디·토큰화 플랫폼 같은 인프라 기업일 수 있다고 본 적이 있습니다. 규제가 명확해지면 기관 자금이 더 쉽게 들어오고, 이들 기업의 사업 기반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명확성이 미뤄지면서, 기대를 먼저 반영했던 자산들이 먼저 되돌림을 받은 셈입니다.

4.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물론 완전히 끝났다고 단정하기는 이릅니다. 톰 틸리스 의원은 표결 이후 재심의가 가능하도록 절차를 밟았고, 다시 표결을 추진할 여지는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문제입니다. 11월 중간선거가 다가오면서 의회의 입법 일정은 빠르게 좁아지고 있습니다. 이번 회기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한다면, CLARITY Act가 다시 본격적으로 추진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이번 부결로 2026년 안에 포괄적인 크립토 시장구조법이 성립될 가능성은 크게 낮아졌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맺으며

그래서 이번 표결에서 제가 가장 중요하게 보는 숫자는, 비트코인 가격도, 49대 50이라는 표결 결과도 아닙니다. 60입니다.

미국에서 크립토 시장구조법을 만들기 위해서는, 결국 이념과 당파를 넘어 60명의 상원의원을 설득할 수 있는 합의가 필요합니다. 트럼프가 상당 부분 양보하고, 1년 넘게 협상하고, 126개의 수정사항을 반영했는데도, 그 숫자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지난 몇 년간 미국 크립토 산업의 가장 큰 화두는 계속 하나였습니다. "언제쯤 우리는 규제의 명확성을 얻을 수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그 답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CLARITY Act가 지금 보여주는 것은, 미국에서 그 '명확성(Clarity)'을 만드는 일이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는 사실인지도 모릅니다.


※ 본 글의 법안 일정·표결 결과·수치는 2026년 9월 16일 시점의 공개 자료를 기준으로 하며, 의회 일정과 시장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 본 글은 정보 공유를 위한 것이며, 특정 자산에 대한 매수·매도 권유가 아닙니다.

이 글에서 다룬 종목
데이터 출처 · 미국 상원 표결 기록 · 상·하원 법안 자료 · 국내외 언론 보도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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